[어깨동무톡] 아일랜드의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 날짜 :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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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박종호(신도림고등학교 교사,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어린이어깨동무 아일랜드 평화 연수 

일시 : 2017. 2. 8 ~ 2. 16

일정 : 인천-더블린-벨파스트-밸리캐슬-데리-벨파스트-더블린-인천

방문 단체 : R-City Project, Corrymeela, Junction, Glencree

평화교육 학술대회: 트리니티 칼리지 ISE 

식민지, 분단, 전쟁이라는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고, 교류를 통한 평화와 화해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일랜드 청소년들과 한국 청소년들이 ‘평화적 공존’을 주제로 하는 교류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아일랜드의 상호이해교육과 통합교육은 벨파스트평화협정에서 평화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아일랜드 분단시기에 평화통일문화기반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평화통일문화기반 조성을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많은 단체가 활동 중에 있습니다. 

연수기간 동안 만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평화 기관과 활동가들을 만난 이야기를 박종호(신도림 고등학교 교사)선생님의 글로 전합니다. 


 

열다섯 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시 두 시간 남짓 버스를 달려 벨파스트에 왔어요. 숙소에 짐을 부리고 나가 네 시간여 개신교도(UDA)와 구교도(IRA)가 대립해 온 곳을 둘러보았어요. 거기서 평화를 심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요.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이고, 아일랜드(남쪽)는 독립 국가인데, 한 나라에서 남북으로 정치적으로 갈라지게 된 역사가 낳은 갈등과 대립의 역사가 엄청납니다. 신교(개신교)와 구교(카톨릭) 지역으로 나눠서 살고, 두 지역 사이에는 벽(Peace Wall)이 있어요. 이 벽은 경계선인데 정치사회, 문화, 종교, 교육 전체에도 가로놓여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양쪽 사이에 더 이상 희생과 대립의 아픔을 이어가지 않게 하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카페(R-city coffee)를 운영하며, 청소년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차이와 구별을 넘어 하나 됨을 경험하도록 합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는가? 물으니 활동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첫째, 15~19세 청소년들이 3년 정도 장기적으로 같이 일하면서 지도력을 기르게 한다. 둘째, 3년 동안 취업교육을 함께 해서 온전한 사회인으로 자라게 돕는다. 셋째,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청소년으로 자라서 자기 마을(community)로 돌아가서 나누게 한다."

이 말에 담긴 활동가 두 사람의 말, 눈빛, 행동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자기네 마을에서 보면 심하게는 배신자(한 사람은 지하조직으로부터 살생부 명단에 올랐다고 합니다.) 소리를 들으면서도 더 이상은 과거의 대립과 어둠에서 다음 세대가 물들지 않기를 바라기에, 스스로 길을 만들고 본보기(롤 모델)가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이 안내하는 대로 아도인(구교도가 모여 사는 지역), 샨킬(신교도가 모여 사는 마을) 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20년 동안 두 지역 사이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공격하고 죽인 흔적(기념비, 벽화, 상징물)을 곳곳에서 만납니다.

둘러보면서 이곳에서 평화를 위한 과정이 진행되면서 담벼락도 높아지고, 과격분자들 행동도 늘어나는 역설적인 상황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 이곳의 공교육이나 정부는 철저하게 둘 사이의 분리 교육, 고립에 몰두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여기에도 정치인들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면서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요. (아, 어디서 너무나 많이들은 말이네요.)

그래도 답은 청소년(Youth)에게 있고, 그들이 서로 만나서 소통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이어 가고 싶다고 합니다.

두 젊은 활동가를 만나고 돌아서는데, 뭐랄까 길 하나 사이에 담을 높게 쌓고 사는데 틈을 내자고 목숨을 내걸고 일하는....참으로 많은 생각이 오가더군요. 

 

 

어제 벨파스트에 와서 첫날부터 센 충격을 받은 탓인지, 둘째 날 방문할 곳도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시작합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남짓 달려서 밸리캐슬에 있는 코리밀라(corrymeela.org)에 도착합니다. 

코리밀라는 평화교육센터와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공동체로 시작해서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때 중재자로 활동한 이력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갈등 상황이 극심할 때 민간단체가 협상을 중재하고 합의를 이끌었는지 자세히 듣고 싶어서 왔고요. 바다가 보이는 방에 자리를 잡고, 이곳 책임자 콜린 크랙(평화운동가)으로부터 이야기를 듣습니다.

코리밀라 공동체의 중재로 1994년에 시작한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은 1997년에 합의에 이릅니다. "협상은 너는 너희 쪽, 우리는 우리 쪽에 살자. 최소한으로 공존하자에서 멈추었어요. 신교도 지역과 구교도가 사는 지역을 나누고 벽을 세우거나 다리를 놓는 식이지요."

"코리밀라는 이 협상에서 중간지대였어요. 중간지대는 회색처럼, 위험한 곳이지요. 대단히 어렵지만 중요한 공간으로 남고자 했어요."

이후 코리밀라는 국제적인 연대로 눈을 돌려서 평화교육 현장과 연결하여 지원하고 협력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평화를 위한 연대에 나선 까닭은 안전한, 평화는 전인류에게 필요한 가치이기 때문이지요. 

"코리밀라가 편안한 항구, 쉬면서 성찰하고, 회복하고, 다시 일어나 움직일 힘을 되찾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배는 이 항구에서 힘을 얻고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하니까요."

식당으로 옮겨서 공동체에서 키운 재료로 만든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여기에 꼭 다시 와서 머물고 싶다고 수다를 떨다가 지청구도 먹었습니다.

 

데리(Derry, London Derry)는 영화 '블러드 선데이 Bloody sunday'가 보여주는 "피의 일요일" 현장이지요.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시민권을 주장하며 평화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영국 군대(공수부대)가 발포하고, 열 세명이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현장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담벼락에 그림으로, 구호로, 사진으로 만나는 풍경은 왜 아직까지도 북아일랜드에서 평화가 오지 않고 있는지 묻게 합니다. 거리 곳곳에서 시민권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만납니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The Junction>에 들어섭니다. 이 도시에서 공동체 연대와 평화 만들기(Peace-Building)를 위해 일하는 시민 단체이지요. 

이곳에서 두 분을 만났습니다. 존 스톤은 데리에서 1998년 평화협정 이후 19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들려주며 "정의로운 평화, 평화로운 문화"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런 가치들이 실현될 때까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실과 신뢰에 대해서 힘주어 강조하는 그 분의 눈빛에서 평생을 운동의 현장에서 단련한 사람이 보여주는 어떤 간절함, 위엄과 엄숙함을 느꼈습니다.

다음으로 만난 분은 시머스 파렐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서로 이해하는 교육을 실천하는 프로젝트 경험을 나눕니다. "또래 중재"를 학교 안에서 실천한 이야기인데, 아주 생생하고 구체 내용도 자세하게 들려줍니다. 갈등 조정, 이해 능력(리터러시)을 길러주는 중고등학교 과정 교재 개발 이야기도 있고요.

파렐은 자신이 살아 온 이력도 감동을 줍니다.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민권리를 위해 일하다가, 투옥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점심시간에 같이 온 정진화 선생님, 이영근 선생님과 파렐과 같이 앉아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오늘 데리에서 만난 존 스톤, 쉐머스 파렐, 이 두 분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평생을 평화를 만드는 일에 매달리면서도 같이 일하는 동료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까지 배우고 싶습니다. 

 

더블린에서 일요일 오후와 저녁을 보내고 자고 난 뒤 월요일 아침,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남쪽으로 달려서 위클로우에 있는 Glencree 공동체에 도착합니다. 산속으로 달리고 달려서 닿은 곳은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도 쉽지 않고, 교통도 불편하고, 산이라 전화도 잘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은 그만큼 각오를 해야한다는 뜻이겠지요.

평화와 치유를 위한 공동체(for Peace and Reconciliation) 글렌크리는 북쪽의 코리밀라와 견줄 만한 곳입니다. 북과 남에서 같은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시민 사회 운동체가 있고, 서로 자주 교류하고 협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리밀라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다면, 글렌크리는 산속에 아주 오랜 터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뒤, 아일랜드 독립을 둘러싸고 영국과 충돌하고, 아일랜드 북쪽과 남쪽에서 대립이 격화되면서 1971년 데리에서 벌어진 피의 일요일 사건, 여기에 대한 보복으로 1972년 벨파스트에서 일어난 피의 금요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더블린에서 시민 사회와 종교 단체 그룹들이 망라한 대화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폭력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북쪽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과연 폭력이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길인가? 등을 대화하면서 폭력을 일으킨 당사자들을 비판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 논의를 이어갑니다.

 


 

이런 논의 끝에 평화 프로세스(peace-building)와 치유(reconciliation)의 터전(base)으로서 글랜크리 센터가 출발합니다. 처음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 온 사람들 피난처로 시작하여, 북쪽 청소년들이 남쪽을 방문할 때 숙박을 제공하고, 캠프 활동을 하면서 남쪽을 경험하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카톨릭쪽에서 왔고, 뒤이어 개신교쪽에서도 오게 되면서, 1980년대를 지나면서 이곳은 환대하고,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글렌크리는 대화, 경청, 환대에 대한 강조는 이어집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대화할 수밖에 없고, 거룩한 신이 인간에게 들어오는 길은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글렌크리는 북아일랜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아픔과 상처를 나누고 치유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는, 서로 쌓여있는 편견과 불신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역사가 오랜 곳이라 둘러보면서 많은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렌크리 로고(상징)는 쪼개졌던 심장이 하나로 다시 모아지는 것을 뜻하는데, 북아일랜드에서 온 피해자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서 완성한 것이라 합니다.

 

Educating for peace in Northern Ireland and Korea 학술대회는 어깨동무 이기범 이사장, 정영철 평화교육센터 소장, 최혜경 사무총장, 김윤선 국장 발표는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알아들었어요.ㅋㅋ 아일랜드 측 발표자 가운데 데리에서 미디어리터러시를 통한 청소년 평화 교육에 헌신하는 분 사례가 좋았고, 부러웠어요.

더블린에서 연수 일정 마지막을 같이 온 분들과 보내고, 새벽 세 시쯤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벨파스트, 더블린, 아일랜드 여행의 기쁨을 "쬐끔 아는 몸"이 되어, 서울로 돌아갑니다. 여행은 떠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그래서 그 자체가 인생이라고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고맙습니다. 더 부지런히 살겠습니다.